이창동의 164분짜리 파격 질문, 넷플릭스 '가능한 사랑'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영화 매니아들과 평론가들이 올해 가장 숨죽여 기다리는 단 하나의 이름을 대라면, 저는 주저 없이 이창동 감독을 꼽겠습니다. <초록물고기>부터 <박하사탕>, <밀양>, 그리고 8년 전 세상을 놀라게 했던 <버닝>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숨겨진 본성과 위선을 서늘하게 해부해 온 거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번 행보는 무척이나 낯설고 파격적입니다. 평생 극장 스크린만을 고집할 것 같았던 이 시대의 리얼리스트가 무려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164분이라는 압도적인 러닝타임, 그리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평단이 올해 최고의 마스터피스로 점찍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세 가지 시선으로 분석해 봅니다.
1. 극장을 떠난 이창동, 넷플릭스라는 자유를 얻다
많은 시네필들이 가장 놀란 지점은 플랫폼의 변화일 것입니다. "이창동 영화를 폰이나 TV 화면으로 본다고?"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이창동 감독에게 '독이 든 성배'가 아니라 '완벽한 자유'를 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상업 영화판에서 2시간 44분(164분)짜리 청소년 관람불가 심리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입니다. 투자 배급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상영 횟수를 확보하기 위해 가위질을 당하기 일쑤죠.
하지만 넷플릭스는 감독의 전권을 보장합니다. 러닝타임이 길어지든, 수위가 높든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 이번 <가능한 사랑>은 자본의 간섭 없이 이창동 감독이 표현하고 싶었던 인간의 심연을 날 것 그대로, 100% 꾹꾹 눌러 담은 정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평론가들이 벌써부터 만점에 가까운 기대를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두 부부의 균열: '사랑'이라는 위선에 던지는 서늘한 질문
영화의 시놉시스는 겉보기엔 단순해 보입니다. 완벽하고 우아한 삶을 영위하는 상류층 부부, 그리고 지극히 평범하지만 단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부부. 섞일 일 없던 두 세계가 우연한 사건으로 얽히며 붕괴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영화의 제목이 왜 <가능한 사랑>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언제나 반어법의 대가였습니다. <멋진 하루>도, <시>도, <버닝>도 제목 이면에 씁쓸한 현실을 감추고 있었죠. 이번 작품 역시 아름다운 로맨스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조건과 배경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당신들이 말하는 그 숭고한 사랑이 정말 '가능'하겠느냐"고 묻는 잔인한 시험대에 가깝습니다.
두 부부의 뒤얽힘은 단순한 치정이나 막장 드라마의 문법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계급적 우월감, 도덕적 위선,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갈망이 164분 동안 팽팽한 서스펜스 속에서 스릴러처럼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3.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 연기 장인들의 잔혹한 앙상블
배우들의 라인업을 보면 이창동 감독이 이 거대한 심리극을 어떻게 끌고 갈지 지도가 그려집니다.
전도연 & 설경구: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 등에서 호흡을 맞췄던 두 배우가 이번엔 이창동의 세계관 안에서 만났습니다. '칸의 여왕' 전도연의 폭발적인 감정 연기와 설경구의 묵직한 내면 연기는 영화의 중심축을 단단히 지탱합니다.
조인성 & 조여정: 최근 가장 물오른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조인성과 <기생충>을 통해 상류층의 묘한 허위의식을 완벽하게 소화했던 조여정의 합류는 신선한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배우들의 진액을 짜내기로 유명한 연출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배우들이 감독의 집요한 디렉팅 속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깨부수고 어떤 파괴적인 얼굴을 보여줄지, 배우들의 연기 대결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 총평: 올가을, 우리의 가치관을 뒤흔들 질문
<가능한 사랑>은 스낵처럼 가볍게 소비하고 잊어버리는 최근의 OTT 콘텐츠 트렌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품입니다. 극장 선공개 이후 넷플릭스에 상영되는 순간, 방구석은 거장 무비의 엄숙한 극장으로 변할 것입니다.
자극적인 도파민에 지쳐 "진짜 인간을 다룬 깊이 있는 영화"에 목말라 있었다면, 올가을 공개될 이창동 감독의 이 정교한 심리 해부학을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화가 끝난 후,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사랑은 진실한가, 아니면 가능한 조건 속에서의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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